[제19회 언론인권상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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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언론인권상 심사평
언론인권센터가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언론인권상은 언론인과 언론사에게 주는 다양한 언론상 중에서도 특별함이 돋보이는 상입니다. 보통 언론상은 속도나 사회적 파장을 중시합니다. 특종인지 여부를 중시하고, 그 보도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그로 인하여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설정합니다. 하지만 언론인권상은 그런 기준보다는 사람과 정의를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특정 보도가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인권침해 현실에 관한 정보를 적절히 전달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하여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살펴봅니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정확하고, 정직하고, 따뜻한 보도인지를 중심으로 보는 것입니다.
2020년 언론인권상 공모에는 방송 분야에서 28개, 신문·통신 분야에서 15개 등 총 43개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예년에 비하여 양적으로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알이 꽉 찼습니다. 치열한 토론을 거쳐 본상에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고희진 등)이 보도한 <가장 보통의 차별·사람 시리즈>가 선정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까지 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영역과 부분에서 차별의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일종의 차별의 지평을 확대하고 심화시켰다는 할 수 있겠습니다.
특별상으로 KBS 보도본부 사회부& 산업과학부(고아름 등)이 보도한 <일하다 죽지 않게>가 선정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2020년 코로나19의 아픔을 더 깊게 만들었던 산업재해 관련 기사를 길게, 꾸준히 보도함으로써 제도 개혁까지 이르도록 기여한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특별상으로 선정된 EBS 다큐프라임 <민주시민교육 5부작 시민의 탄생> (백경석 등)은 민주시민의식이 발현되어야 인권침해를 예방 통제하고, 사후구제까지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권의 기반 조성에 해당하는 사항이라고 보았습니다. 시민들의 인권의식 강화와 새로운 일상생활 속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들을 깊이 있게 풀어 놓음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별공로상으로 특별히 N번방 최초 보도자인 <추적단 불꽃>을 선정했습니다. 불꽃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문제를 보도한 대학생 2명으로 구성된 그룹입니다. 이들의 보도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인권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등장하고, 다른 언론매체들의 보도에 실마리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N번방 방지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점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본상] 경향신문 <가장 보통의 차별·사람 시리즈>
- 고희진, 김희진, 유정인, 이보라, 조문희, 탁지영, 허진무, 김유진, 이아름, 황경상
기사는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 존재하는 차별적 문화가 고정관념과 편견위에 자라나고, 이렇게 향유되는 제도·문화적 차별은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교차차별 속에 단단해지므로, 차별을 멈추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각자의 인식의 개선이 요구된다는 점을 성별, 성정체성, 장애, 병력, 외모, 나이, 출신지역, 배우자의 유무, 종교 등의 사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겪는 부당함을 구체적으로 예시함으로써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나아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차별·특권 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 전후의 태도변화를 통해 실증하고, 차별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관행적인 법·제도적 차별의 금지를 법규범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로써 차별의 배제가 사회의 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점이 출중합니다.
다만, 기사가 헌법의 평등권 조항을 선언적인 것이라고 단정하여 마치 헌법은 구체적인 규범력이 없는 것처럼 읽힐 수 있게 서술한 것은, 평등권 헌법조항이 30년이 넘게 구체적인 재판규범으로 현실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더이상 선언적이라 하기 어렵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가 공권력 주체와의 관계가 아닌 차별취급에까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지 헌법의 규범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므로, 평등에 대한 법체계를 다소 부정확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옥의 티가 아닌가 합니다.
[특별상] KBS <일하다 죽지 않게>
- 고아름, 박민철, 홍진아, 송락규, 김지숙, 허효진, 양예빈, 박상욱, 황채영
산업재해, 즉 노동자들이 재해를 당해서 다치거나 죽는 일은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산재 소식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한해 2천 명이 넘게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는 것이 너무나 흔한 일이 된 한국 사회. 21년간 OECD 국가 중 산재가 1~2위를 놓친 적이 없는 참담한 현실에도 국가나 기업은 움직이지 않았다. 노동자의 죽음은 불가항력적인 일로 치부됐다. 몇 년 전 재난참사를 기록하던 작가들이 왜 노동현장의 참사는 참사로 여겨지지 않는가에 대해 작가들이 물음을 던진 바 있다. 그러다 2018년 청년발전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후,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시민사회의 운동을 통해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돼 왔다.
운동의 영향으로 언론에서 산재 보도가 조금씩 생겨나고 늘어났다. 작년 경향신문 1면의 산재보도는 우리 사회에 파장을 주기도 했다. 지난 7월 2일부터 KBS 9시 뉴스에서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꼭지를 마련해 매주 산재 사건을 1~2꼭지 이상씩 몇 개월간 보도했다. 그 보도 이후 시민들에게 ‘산재는 인권의 문제’라는 시선과 인식을 형성하는 데 역할을 했으며, 일하다 죽지 않도록 하는 법제도 중 하나인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라는 제정 운동에도 큰 힘이 되었다. 꾸준한 보도로 시민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산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며, 제도와 관행, 정치와 기업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실 보도의 속성상 새로움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언론에서 노동자의 죽음을, 산재 문제를 홀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꾸준한 보도란 그만큼 보도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며 취재를 심도 있게 해야 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KBS의 <일하다 죽지 않게>는 산재 사건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산재 발생의 구조와 처벌의 현실, 피해 가족의 현실, 업종별 산재의 양상과 기업의 태도 등 여러 측면으로 보도했다.
특별상 수상의 이유 중 하나는 꾸준히 하나의 주제로 보도한다는 것은 언론 보도의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새롭게 던져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KBS의 <일하다 죽지 않게> 보도 이후 방송의 산재 보도의 양과 질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언론이 새로운 의제를 발굴만이 아니라 의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했다. 이제 보도의 신속성이나 새로움이라는 것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고민할 때다.
물론 특별상으로 선정하면서 공영방송이 너무 늦게 산재에 주목한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용의 양과 질, 보도가 유지됐던 기간을 고려한다면 이는 단지 시류에 휩쓸려 기획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렇게 <일하다 죽지 않게>처럼 다른 의제에도 우리 사회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아젠다 키핑의 노력을 이어가기를 바라며 특별상 대상을 선정했다.
[특별상] EBS 다큐프라임 <민주시민교육 5부작 시민의 탄생>
- 백경석, 채라다, 이희원
EBS 다큐프라임의 민주시민교육 ‘시민의 탄생’은 현대사회에서 망각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 문제를 젊은 시각으로 접근한 수작이다. 악플에 시달리는 뮤지션에서 표현의 자유와 한계를 생각하고, 무분별한 도시개발에서 환경권, 난민 혹은 흑인 노동자를 통해 거주의 자유와 기본권은 국적을 초월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거대한 법이나, 정책 혹은 정치적 쟁점보다 가까운 우리 주변 사람을 통해 편안하게 기본권을 일깨워 준 점 역시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교육방송이라는 본연의 소임에 충실한 프로그램이고, 교육부가 이 프로그램을 민주시민교육 수업에 활용토록 한 것도 보도의 성과로 평가했다.
[특별공로상] 추적단 불꽃
<추적단 불꽃>은 자신들이 목격하고 취재한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진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신변위협을 무릅쓰고 고발한 첫 번째 언론인이었다. ‘단’과 ‘불’은 여성을 꽃으로만 여기고 그들에 대한 성착취를 별스럽지 않은 사건처럼 감추려는 우리 사회에 불꽃을 던짐으로써 관습을 불태우는 들불을 일으켰다.
<추적단 불꽃>이 고발한 엔(n)번방은 디지털을 통해 성착취가 일어나는 단면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유사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단’과 ‘불’이 일으킨 작은 불꽃이 또 다른 연대를 만들었으며, 정부와 국회가 관습을 깨버리는 입법을 하도록 끌어냈다. 그들의 노력으로 디지털 성착취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음란행위가 아니라 범죄로 규정되었고, 디지털 성범죄를 처벌함으로써 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는 데 이바지하였다. 또한 ‘단’과 ‘불’의 기사는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데 기여하였다.
(사)언론인권센터는 <추적단 불꽃>이 던진 소중한 불꽃이 우리 사회를 사람 사는 세상이 되도록 더 밝혀주었음을 높게 평가하면서 그들의 열정에 대해 제19회 언론인권상 특별공로상을 수여한다.
2020년 12월 10일
(사)언론인권센터 제19회 언론인권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