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경쟁과 죄수의 딜레마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의 저자 제랄드 브로네르는 미디어 간의 과열 경쟁 상황이 '죄수의 딜레마'를 낳는다고 설명합니다. 죄수의 딜레마는 같이 범죄를 저지른 A와 B가 따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둘 다 침묵하면 두 사람 모두 6개월 형을, 둘 다 자백하면 둘 다 5년 형을, 한 쪽만 자백하면 자백한 쪽은 출옥하고 다른 쪽은 10년 형을 받는 허구의 상황을 가정한 게임이론입니다. 두 사람에겐 최상의 선택지(6개월 형)가 존재하지만, 경쟁관계에 있고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함으로써 일종의 집단적 비합리성(5년 형)에 이르게 됩니다.
브로네르는 기자와 언론사가, 참인지 거짓인지 불확실한 정보 혹은 보도 가치가 미미한 루머를 기사로 다루게 되는 이유는 경쟁이 과열되면서 특정 기자나 언론사가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을 때 져야 할 위험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보도하지 않고 기다리다가는 경쟁사에게 특종을 뺏길 가능성이 있고, 또 인터넷에서 특정 정보가 사실 여부나 보도 가치와 상관없이 소위 '조회수 대박'을 터뜨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신중하게 침묵을 지킨 언론을 기억해 주거나 칭찬해 줄 사람도 거의 없죠. 결국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진 기자와 언론사는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 가십성 루머라 해도 우선 쓰고 보게 되는 거고, 이는 저널리즘의 신뢰도 저하, 공론장의 황폐화라는 집단적 비합리성을 낳습니다.
죄수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사례로 브로네르가 든 것은 프랑스 대통령 부부 불륜설입니다. 프랑스 정통 미디어 간에는 정치인의 사생활은 다루지 않는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2010년 당시 영부인이었던 브루니가 사르코지 대통령과 결별하고 가수 비올레에게 가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환경부 장관에게로 갈 것이라는 소문을 파리의 여러 언론사 편집국이 보도하지 않았던 이유죠. 하지만 유명한 기자가 트윗에서 이 소문을 언급하고 며칠 후 유력 주간지의 인터넷 블로그에서 이 소문을 다루면서 묵시적 합의는 깨지게 됩니다. 거의 모든 프랑스 일간지, 라디오, TV가 대통령 부부의 불화설을 보도했고 세계 여러 언론 역시 국제 뉴스로 소개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대통령 부부의 불륜 의혹을 신뢰받는 기자와 유력 주간지가 공개적으로 거론하자 빗장이 풀려버린 거죠. 추후 불륜설을 완전한 허구로 밝혀졌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