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당해봤어? ② 발간사] 선한 얼굴을 가진 언론을 그리다

[발간사]

선한 얼굴을 가진 언론을 그리다

세상 만물이 그러긴 하지만, 언론은 특히 양면성을 갖는다. 언론에는 물질과 정신이 한꺼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신문사가 만들어내는 상품은 신문지지만, 그것을 넘어 신문지 안에 담긴 콘텐츠다. 방송사가 만들어내는 상품은 방송프로그램이지만, 실제로는 방송프로그램 안에 담긴 콘텐츠다. 이 콘텐츠를 독자와 시청자에게 판매한다. 별도로 신문은 독자를, 방송은 시청자를 생산한다. 신문과 방송의 콘텐츠를 구입한 독자와 시청자들은 또다시 신문사와 방송사가 판매하는 상품이 된다. 신문과 방송은 이렇게 이중으로 상품을 생산한다.

언론사가 만들어내는 상품이 이중적이라는 사실은 언론의 이중적 성격으로 연결된다. 언론의 정신적 부문은 공익성과 공공성을 추구한다. 언론의 물질적 부문은 사적· 상업적 이익을 추구한다. 이 정신 영역과 물질 영역은 끝없이 충돌하고 융합한다. 정신과 물질의 변증법, 공익과 사익의 변증법이 언론의 본질이다.

언론의 공공성과 공익성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균형, 사회적 합의, 공동체, 해방, 사회정의 등의 가치와 연결된다. 언론의 선한 얼굴이다. 언론의 사적 성격은 독점, 지배, 반민주주의, 이윤추구, 무한경쟁, 권언유착, 전쟁, 인종차별, 반인권, 양극화 등과 연결된다. 언론의 악한 얼굴이다.

언론인권센터는 기본적으로 선한 세상을 지향한다. 이 책은 주로 언론의 악한 얼굴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선한 사람들의 인권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언론인권센터는 악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의 인권도 소중하다고 본다. 악행은 처벌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권침해까지 당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도 언론에 의해 부당한 피해를 입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가치지향이다. 언론이 저지르는 인권침해는 사건보도과정에서, 정치나 경제관련 보도에서, 그리고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인 국민의 알권리와 직접 충돌하는 정보공개 운용과정에서 끝없이 발생한다.

이 책은 언론인권센터가 지난 몇 년간 담당했던 인권침해보도사건들을 정리했다. 사건보도과정에서 가해자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종석 사건 어린이 피해자에 대한 과잉취재로 피해자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건, 신분을 속이고 현장에 접근해 부정확한 내용의 방송을 했던 키즈카페 보도사건, 인터넷 게시글에 대하여 언론이 보도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와 신분노출로 인하여 인권침해를 당한 사건, 세월호 사건당시 구원파와 관련한 허위보도사건을 선정했다.

정치보도에서 발생한 언론피해의 사례로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무죄판결을 받은 유우성 씨에 대한 공격적 언론보도, 재판부에 비공개로 제출했던 탄원서를 본인 동의 없이 보도함으로써 피해를 입은 김민수씨 사건, 통일운동가 정연진씨에 대한 인터넷 언론사의 허위보도와 무분별한 종북몰이에 대하여 손해배상과 기사 삭제명령을 받은 사건을 선정했다.

경제관련보도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례로 국민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우울하게 만들었던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에서 직업병을 얻은 노동자들과 관련된 반올림사건을 선정했다.

언론인권센터는 국민의 알권리 실현과 관련이 깊은 정보공개운동을 중요한 활동영역으로 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센터가 언론관련 정보공개 활동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와 벌인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및 승인관련 정보공개소송과, 한국방송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 관련 정보공개소송을 사례로 선정했다.

언론은 선한 도구일 수도 있고, 악한 흉기일 수도 있다. 언론은 인권을 보호하는 보루 역할을 담당한다. 언론자유 자체가 기본적 인권이기도 하고, 다른 인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했을 때 언론이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사회에 경보를 울리고, 이를 수정· 구제할 기회를 갖도록 한다.

한편 언론은 취재과정과 보도과정에서 언제라도 인권침해를 할 수 있다. 이 침해에 대하여 주로 속보성의 요구 때문에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다는 변명이 제시된다. 수긍할 수는 있지만 동의하기는 어려운 변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선한 얼굴을 가진 언론세상을 그리고자 한다. 선한 언론은 진실과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끝없는 노력과 확인, 그리고 세상을 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다. 선한 언론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침해 등 언론의 인권침해는 하지 않는다. 특히 이데올로기적 이유나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상황을 왜곡하거나 허위정보를 만들거나 마녀사냥을 하지 않는다.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언론이 디딜 땅이 좁아지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선한 얼굴을 가진 언론세상이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류한호